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
<사랑: 해방의 씨앗>
@서울 엘타워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사랑: 해방의 씨앗’을 주제로, 무한 경쟁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비영리 활동의 본질적 가치인 사랑을 회복하고 되새기기 위해 준비됐습니다. 비영리 관계자 400여명과 함께한 열일곱 번째 체인지온 컨퍼런스 현장을 소개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과 함께 시작하는 특별한 오프닝으로 참가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소식을 소개하고 환대하며 개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컨퍼런스 당일 생일을 맞이한 참가자도 있어 준비한 케이크와 노래와 함께 격하게 생일을 축하해드리기도 했어요!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의 기획 의도를 살펴볼 수 있는 오프닝 영상도 함께 시청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을 확인해 보세요! 🙂
‘사랑: 해방의 씨앗’을 주제로 진행된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사랑은 생존이다’, ‘기술에서 사랑을 배우다’, 해방을 위해 사랑하자’ 등 총 3개 세션에서 6명의 연사가 오늘날 사랑이 갖는 의미와 사회적 역할, 사랑을 통한 관계의 확장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강연 별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드릴게요!
Session1. 사랑은 생존이다
사랑의 탄생 – 사랑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이정모 (전)국립과천과학관장
지구는 아름답다. 파란색의 바다와 하얀색의 구름이 있어 아름다운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이유는 땅과 바다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면적의 땅을 가진 지구는, 구조(층위) 또한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지구는 지각, 암석권, 암류권, 맨틀, 외핵, 내핵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외핵에 있는 자기장이 생명체를 살게 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다.
한편, 지구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건 맨틀이다. 맨틀은 천천히 흐르는 고체로, 이에 따라 대륙의 분포가 바뀌고 바닷물의 흐름이 달라진다. 바닷물의 흐름이 바뀌면 기후가 바뀐다. 기후는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이므로, 기후 변화에 따라 생명이 달라진다. 이를 진화라고 한다.
새로운 생명이 생기려면 누군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생명의 역사는 생기고 사라지는 반복이다. 생명의 역사는 약 38억 년인데, 이를 1년으로 변환해 보자. 1월에는 아주 작은, 마이크로 RNA가 있었다. 5월쯤 되니까 미생물이 산소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온갖 박테리아가 생기며, 6~7월이 되자 산소를 사용하지 못하는 박테리아와 산소를 사용하는 박테리아 간 융합을 비롯해 다양한 박테리아들이 무성생식을 통해 공생하기 시작한다. 9월에는 유성생식(섹스)이 발견된다. 유성생식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위험하지만, 환경이 급격히 바뀔 때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 이때가 10억년 전이다.
섹스가 생기면서 죽음도 생긴다. 똑같은 개체가 복제되는 무성생식과 달리 유성생식은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지므로, 이 개체가 죽으면 이 조합의 개체는 끝난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생명이 생긴다. 12월 25일즈음부터야 포유류가 생기고, 12월 31일에서야 직립보행하는 인류가 생긴다. 그리고 호모사피엔스는 12월 31일 자정에 가까워진 시각에 등장해 5분만에 모든 인류를 대체한다.
급격한 환경변화로 생명체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대멸종’은 지금까지 다섯 번 있었고, 현재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 대멸종이 일어날 때, 최고 포식자와 가장 많은 생명체는 반드시 모두 멸종된다. 지금 최고 포식자와 가장 많은 생명체는 모두 인간이다. 자연사의 개념에서는 적당한 때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멸종이 있어야 하고, 멸종이 있으려면 기후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만날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지금까지 자기 잘못으로 멸종한 생명체는 없었다. 멸종은 나쁜 게 아니다. 찬란하게 멸종할 수 있다. 찬란함이 대단한 건 아니다. 무언가를 남겨서 다른 생태계가 생기는 데 기여하면 된다. 지구는 여전히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지구에 앞으로도 누군가는 살아가겠지.
사랑과 돌봄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북텐더
인간에게 사랑이 뭘까? 어느 정도 중요할까? 무수히 많이 던진 질문이지만, 쉽게 답을 내릴 순 없다. 500년 전, 1000년 전 사람도 사랑을 생각했을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500년 전 사람에게 사랑의 의미가 같을 순 없을 테다.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는 굉장히 짧고, 그중 우리가 기억하는 인간의 역사는 아주 멀리 잡아봤자 만 년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에, 사랑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매우 놀라울 만큼 빠르게, 여러가지 방향으로 변해 왔다.
지금은 사랑이 너무 흔해서 어려운 시대라면, 사랑이 쉽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 나의 세대 정도만 해도 데이트가 쉽지 않았다. 1980년대 신문을 보면, 혼전순결은 주요 사회면에 주요 이슈로 등장하던 주제였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24년에 실렸던 기사다. 사회면에 실린 기사인데, 한 여성이 결혼식을 앞두고 도망간 이야기다. 기사에 따르면 아버지끼리 혼인을 결정해 통보했는데, 여자의 기대치에 남자가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게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는 사실은 한반도에 가문의 결정으로 통보되는 결혼과 도망치는 당사자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기에 이루어진 결혼에는 사랑이 끼어들 틈이 적었고, 사랑이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만큼 결정적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의 의미와 중요성이 개인에게는 있었으나, 사랑으로 결혼을 결정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사랑이 매우 흔하다. 사랑은 더이상 금기가 아니고, 권장되기도 한다. 결혼 연령이 점점 늦춰지며 ‘평생 미혼’이라는 개념이 점점 더 유의미해지고 있다. 이제 결혼은 오롯이 개인의 결정이다. 사랑을 굉장히 진정성 있게 생각하고, 아주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동시에, 연애와 결혼의 연관 관계가 깨졌다. 더이상 연애는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고, 독립적 관계로 존재한다. 그리고 신분 개방이라는 사회적 성격의 개방성과 섹스에 대한 개방성, 인터넷의 발명으로 무수히 많아진 만남의 경로 등이 연결된 ‘선택의 과잉’은 연애와 사랑(의 대상)에 시장주의를 불러온다. 상대를 ‘반품 가능’한 존재로 치부하며, 언제든 끝낼 수 있고 미래가 불투명한 ‘썸’과 같은 관계가 생긴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연애로 대표되는 에로스적 사랑이 너무 강해지며 사랑의 다른 형태, 특히 돌봄의 영역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양방향과 독점, 피드백이 필수인 에로스적 사랑은 사적 영역에 머물지만, 사랑은 공적이기도 사적이기도 하다. 돌봄이 특히 그렇다. 인간과 제도, 인간과 비인간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돌봄의 사랑이 사회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돌봄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사회와 국가가 되기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국가에게 개인을 돌보는 주체가 되기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Session 2. 기술에서 사랑을 배우다
A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AI와 SW
류석영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카카오임팩트 이사장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이끌고 있다는 증거가 많다. 챗봇 ‘이루다’를 다들 아실 거다. 처음 만들 때, 그냥 기술을 통해 재미있는 채팅봇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테다. 그러나 만든 후에 깊은 혼남을 경험했다. 그때 우리가(기술이)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했다. 카카오톡 송수신 오류가 났을 때의 영향력 또한 예상하지 못할 만큼 컸다.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에 전 세계가 당황하고, 놀라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컴퓨터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에 우리가 뭘 해야 할까에 대해 각 학교의 학과장이 모여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냥 재밌어서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니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며,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개발 인재를 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 얘기를 할 텐데,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봤다.
첫째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가 함께 할 필요성이다. 기술과 인문사회 영역이 함께 할 때 유의미한 방향으로 기술이 활용되고 발전될 수 있다. 일례로, 데이터 편향성은 다양한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을 함의하는데, 기술 개발에 쓰이는 많은 데이터는 백인 남성 중심이다. 심지어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데이터를 쓸 때도 많고, 이때, 데이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가난한 국가에 맡긴다. 인문사회 분야와의 다양한 협업 사례를 통해 깨달은 점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안전지대를 넘어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할 필요성이다.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카카오임팩트 사례를 중심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카카오임팩트의 ‘테크 포 임팩트’ 수업은 카카오임팩트가 돕는 사람들의 활동에 기술을 더해 더 큰 도움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이제까지는 기술로 좋은 논문을 쓰고 돈을 많이 버는 식의 생각만 했는데, 우리가 가진 기술이 아주 세계적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래서 그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음을 체감했다’는 학생 한 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셋째는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SW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이다. 일례로, 카이스트에는 포용성위원회가 있다. 여성이 20%고 장애인은 그보다 훨씬 더 적은 환경에서, 다양성을 고려하고 모두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이 아니라 ‘형평’에 대해 말하며 고민하고자 한다. 변화를 시도할 때는 거부가 많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고 나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뀐다. 이를 위해 서로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라는) 전혀 다른 동네의 사람들이 함께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안전지대를 벗어나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AI 기술,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
AI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활용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먼저, 구글의 아홉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첫째로, 당뇨병이 심해지면 실명이 될 수 있는데, 이를 막아주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로, 홍수를 예측하는 데도 인공지능이 사용된다. 셋째, 도시 교통 신호를 최적화해 배기가스를 줄이는 서비스가 있다. 넷째, 위성 사진을 활용해 전세계 건물의 윤곽을 추출한 대규모 데이터셋을 제공해 자연 재해가 발생하면 영향을 받는 건물의 수, 공식 주소가 없는 지역에 디지털 주소 시스템 제공, 인구 밀도와 정착지 정보를 활용한 의료 접근성 분석 등에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다섯째,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헬스케어 앱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향상하는 사례가 있다. 여섯째, 표준발화를 기준으로 개발된 기존 음성인식기의 한계를 넘어 비표준발화를 하는 사람들의 음성도 인식할 수 있도록 개발한 기술 사례가 있다. 일곱 번째는 아이들의 읽기 능력을 향상하도록 발음 교정 등을 제공하는 앱이다. 여덟 번째는 도시 내 나무의 분포와 밀도를 분석하는 기술로,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공기 질을 향상하는 데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고해상도 이미지를 분석해 교실 크기의 산불도 감지하고 산불 경계면을 실시간으로 지도화하여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구글 사례는 너무 커서 와닿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의 ‘테크포임팩트’ 사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AI 기술로 돌고래를 위험한 관광에서 지켜주고자 개발 중인 기술이다. 드론 영상을 분석해 50m 내로 돌고래에 접근 할 경우 신고가 되도록 한다. 둘째로, 챗봇 기술로 유기동물과 입양 희망자를 연결하는 기술이 있다. 입양을 한번 했다가 유기하는 경우가 많고, 입양 상담량도 굉장히 많아서, 채팅 기능을 고도화해 입양 절차를 개선했다. 세 번째 사례는 누구나데이터와 함께 한 사례로, AI 기술을 통해 후원 모금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거다. 모금 데이터 분석을 자동화해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데이터 분석가’를 비영리 재단에 넣어주겠다는 취지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네 번째는 의료기기가 많이 구비되지 않은 나라도 백내장을 진단할 수 있도록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다. 다섯 번째는 태양광 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정확한 발전량 측정이 굉장히 중요한 분야에서 안정적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돕는다. 여섯 번째는 느린학습자 대상 서비스 기술이다. 현재 국민의 13.6%가 느린학습자로 추정되는데, 느린학습자와 일반 학습자의 정보 격차가 점점 커지기 쉬운 상황에서 느린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생성해내는 서비스다. 일곱 번째는 휠체어 사용자가 휠체어를 타고 운동을 재미있게 하도록 게임과 접목한 기술이다. 여덟 번째는 취약 계층의 복약 지도 상담 효율을 높이는 기술 활용 사례다. 평균 30분이 걸리는 복약 상담을 음성인식으로 기록 요약해 다음 상담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리 시스템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농난청인과 문자통역사 매칭 서비스 앱 개발 사례가 있다.
지금까지 열 여덟 개 사례를 보여드렸다. 하나의 사례로 멈추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방안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시스템이 아닌 문화로 풀고자 한다. 개발자들이 재미와 보람을 느껴서 계속 하고 싶어 하고, 계속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 섹터의 임팩트 사업에 AI 기술을 활용할 분야가 떠오른다면 알려달라.
Session 3. 해방을 위해 사랑하자
코다,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사이에서
이길보라 작가・영화감독, 코다코리아 대표
사랑, 연결, 해방을 키워드로 저의 사례와 코다코리아의 사례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우리 엄마아빠는 사진으로도 말을 할 수 있는 농인이다. 저는 엄마에게 수어를 배우며 자랐다. 농인의 자녀 중 90%는 저와 같은 청인으로 자라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중문화와 이중언어 환경에서 성장한다. 밖에서는 열심히 소리를 사용하다가 집에 오면 손으로 말하고, TV도 소리 끄고 보는 게 일례다. 이렇게 농인의 부모에서 태어나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코다’라고 부른다.
어렸을 때는 지금과 같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저희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셔서, 제게 말씀하시면 제가 통역할게요.”라고 말하곤 했다. 눈에 보이는 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농인임을 알리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인”이라고 말을 하는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 ‘장애인은/청각장애인은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하지?’ 라며 당황하시는 분도 있고, ‘대단하다, 장하다’ 하며 주머니에서 오백원을 꺼내 쥐여주시곤 했다. 오백원을 받을 때마다, 제 머릿속에서는 ‘왜 주지? 우리가 불쌍한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 엄마 아빠와 나는 수어로 충분히 대화를 하는데 왜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가엾어 하지?’ 라는 의문이었다. 동시에, ‘내 동생은/엄마 아빠는/가족은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장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굉장한 모범생으로 자랐다. 제가 무언가를 잘하면 “장애인 부모를 뒀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제가 무언갈 잘못하면 “너는 부모가 장애인이면 잘 해야지 왜” 라는 말이 붙는 경험을 하며, 모범적 언행이 저와 제 장애인 부모를 함께 지키는 생존법이라고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보라 같은 사람들을 코다라고 부른대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2012년에 미국 뉴욕에 있는 한 학교에 간다. 이 학교의 특이한 점은, 미국수어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학생은 농인이 반, 청인이 반이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수어를 쓴다는 것도, 농인이 교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충격이었다. (한국은 아직도 농인이 고위직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다.) 또한, 학교는 농인 중심인 ‘데프 스페이스(deaf space)’이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자리가 배치되어 있고, 벽이 대체로 유리라 서로를 볼 수 있는 등, 모든 공간이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한국에도 만약 그런 찬란한 농인 문화가 있었다면 우리 엄마아빠의 삶이 다른 모양이었을 수도 있겠다, 지금도 우리는 행복하지만 더 많은 가능성을 꿈꿀 수 있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반짝이는 박수소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코다를 알리는 영화였고,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례로 소개되며 상영되곤 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상영된 후 “제 경험이랑 똑같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모으며 ‘코다코리아’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중문화를 경험하는 게 코다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코다의 경험은 다양한 소수자의 경험과 교차한다. 장애인 부모를 가진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경험, 집밖과 집안에서 음성언어와 수어로 나뉘는 다문화 경험, 어렸을 때부터 통역하며 부모를 돌봐 왔던 영 케어러의 경험, TCK(제3문화 아이), CCK(교차문화 아이)와 같은 경험이 그 예다. 그렇게 연결된다.
나의 삶과 경험, 다큐멘터리와 코다코리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랑, 연결, 해방이란 키워드에서 사랑과 연결 중 무엇이 먼저일지는 모르겠다. 사랑하며 연결된 것 같기도, 연결됨으로써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랑과 연결읕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해방의 씨앗 뿌리기
은유 르포 작가
지금까지 열 네권의 책을 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해방시킨 글이 있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글쓰기에 대해 쓴 글이 있고, 르포작가로서 현장을 담았던 글이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제 정체성은 글쓰기 강사이자 르포 작가이자 독서가였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듣고 쓰는 일 십년이면 사람이 변한다.
르포 책 중 가장 공유하고 싶은 책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다.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고 자살한 특성화고 아이의 이야기다. 그때가 2014년인데, 당시엔 직장 내 괴롭힘이란 용어가 없었다. 대신 그런 말들이 많았다. ‘다 그런 식으로 배우는 거다’, ‘그걸 거쳐야 회사 사람이 되지’, ‘남의 돈 벌기가 쉽니’라는 말, ‘월급엔 모욕수당이 있다’는 식의 자조적 농담들. 지금도 많이들 한다. 폭력을 묵인하고 승인하는 말들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할 일도 아니다.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쓰며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존엄을 지키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였다. 살려고 일하는데 일하다 내 삶을 그만두면 안 되지 않냐.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번도 내 삶을 지키는 법을 배운 적 없다. 힘들면 그만해도 되고,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고, 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지킬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사는 방식이 여러 갈래라는 걸 아는 게 ‘해방’이다.
그런데 개인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사회적 상처를 봐야 한다. 저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싶다. 가장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는 가부장제에서는 구성원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개개인이 뜻을 펼치기도 어렵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쉽게 쓰고 버리는 사회로 연결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제일 높은 나라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많다. 최근 몇 년간 화제 되어 온 쿠팡의 산재 사례를 보며 ‘난 쿠팡에서 일 안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남에게 관심 없는 사람은 나에게도 관심 없는 사람이다. 종이컵을 쉽게 쓰고 버리는 사회에서 사람도 쉽게 쓰고 버린다.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이 어떻게 길러질까? 남의 처지와 고통을 듣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내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고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동시에 나의 경험과 아픔도 끌어올 때 공감이 가능하다. 감수성을 가꾼다는 건 계속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고 공감이 해방이 될 때 생기는 변화들이 있다. 첫째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게 된다. 나의 경우,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진다’는 보부아르의 말처럼, ‘K-장녀’로 살면서 나보단 늘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우선하던 사고가 바뀌었다. 둘째로, 나와 남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읽고 쓰는 행위는 고통을 언어화하고 경험을 재해석하는 과정이었다. 내 삶을 소중히 여기니 남의 삶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모르겠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이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수상 연설에서 나온 말이다. 알고 있는 유일한 것 하나로 영원히 만족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 그래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책, 글쓰기는 성장의 경험이다. 내 경험을 나누며 성장한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듣고 쓰는 르포 작가로서, 제가 바라는 세상은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서로의 고통을 알고 나눌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폐막식에서는 2024 체인지온 추천도서 10권을 추첨해 열 분께 선물해 드렸습니다. 올해 체인지온 연사님들이 추천한 도서 6권과 다음세대재단이 컨퍼런스를 기획하며 참고한 도서 4권, 총 10권의 도서를 만나보세요!
- 찬란한 멸종 – 이정모
- 교양고전독서 – 노명우
- KRAFTON WAY – 이기문
- 랜선사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에이미 S. 브루크먼
- 반짝이는 박수소리 – 이길보라
- 해방의밤 – 은유
- 사랑예찬 – 알랭 바디우
-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 제니 오델
-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마지막으로, 참가자분들과 함께한 체인지온의 하루를 담아낸 스케치 영상을 보고,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된 초콜릿 기념품을 나누며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가 막을 내렸습니다.
강연과 더불어 참가자들이 재밌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로비 프로그램, 점심 네트워킹, 공연 등도 진행되었는데요,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 하는 분들을 위해 컨퍼런스 현장의 이모저모 프로그램들을 공개드립니다!
[활동가들이 바라보고, 바라는 비영리]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에 함께하는 387인의 활동가들에게 시급한 사회문제와 비영리 활동에 대해 물었고 그 결과를 인포그래픽으로 나타냈습니다. 또 2025년 바라는 나, 우리 조직, 비영리 생태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스티커를 통해 직접 의견을 남기고, 다른 활동가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어요.
[2025 체인지온 캘린더]
당일 가장 인기 폭발했던 프로그램이었죠! 연사님들과 참가자분들께 ‘사랑’과 관련된 시, 노래,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추천받았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서로가 추천하는 사랑의 콘텐츠가 담긴 나만의 특별한, 사랑이 가득한 2025 체인지온 캘린더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했답니다.
[컬러링월]
위기 속 사랑의 연대를 표현한 드로잉을 컬러링월로 만들었어요! 컬러링월에 적힌 참가자들의 이름도 살펴보고, 색을 칠하며 다함께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켰습니다.
[포토존]
빠질 수 없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메시지월]
비영리 동료 간의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메시지 카드를 랜덤으로 뽑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캔디도 즐겨봤습니다. 메시지를 모두 떼고 난 후에는 2024 체인지온 추천도서와 연사들이 추천한 사랑의 시와 노래를 확인할 수 있어 더 특별했어요!
[점심시간 네트워킹]
올해 점심시간에는 신청서에 기재한 정보를 바탕으로 랜덤으로 그룹을 매칭해봤어요. 우리 그룹은 어떤 주제로 묶였을지 자유롭게 네트워킹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정답을 맞춘 그룹에는 소소한 선물을 드리기도 했답니다.
[‘오직목소리’의 특별공연]
유명 아카펠라 그룹 ‘오직목소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비영리활동가들을 응원하기 위해 특별한 공연을 준비해주셨어요! 오직목소리의 따뜻한고 웅장한 목소리와 함께, 활동가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스크린을 통해 나타나며 현장 분위기가 더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어요!
[몰래 온 선물]
오후 강연에서도 참가자분들이 집중해서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점심시간 틈을 타서 참가자분들의 자리에 간식과 구강용품을 깜짝! 선물드렸어요. 맛있고 건강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협동조합, 소셜벤처 등의 먹거리 제품을 메뉴판처럼 소개하며 자체 홍보요정이 되기도 했답니다!
*환경을 위해 탄소배출량이 적은 종이팩, 사탕수수를 기반으로 한 식물성 소재의 뚜껑으로 제작된 기픈물은 아이쿱생협의 후원으로 제공되었습니다.
*당일 아이쿱생협에서 제공한 물품을 통해 분리배출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오픈전시회]
특별한 의미를 담아 제작한 각 단체의 굿즈나 리플렛 등이 잘 소개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홍보하고 나누는 오픈전시회도 진행했습니다. 올해도 새롭고 다채로운 홍보물들로 눈도 즐겁고, 가져갈 수 있는 물품들도 많아 쏠쏠한 시간이었습니다!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 여러분이 보내주신 큰 사랑에 보답하고자 정말 알차게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이 남겨주신 소중한 코멘트로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내년 개최될 18번째 체인지온 컨퍼런스도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연사들의 강연과 섬세하게 잘 짜여진 부대 콘텐츠. 특히 비영리 단체의 일원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그럼에도 바쁜 업무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주는 점이 특별했습니다.”
“사랑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사회 변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마음의 스위치를 키는 것 같았어요. 하루 동안 느낀 이 감동으로 현장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싶다고 느꼈어요.”
“저는 현장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지역, 분야 , 경력을 가진 분들과 직접 소통하며 현장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시간이 좋습니다. 연사님들의 강연을 통해 트렌드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도 너무 소중했습니다.”
“늘 다른 사람들을 돌보거나 살피는 비영리 활동가들이 돌봄과 살핌을 받는 자리였어요. 세세한 것까지 배려받고, 존중받고, 환대받는 느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고, 상쾌한 공기를 호흡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생에 처음 비영리와 관련된 AI와 SW 강연을 들었는데 이렇게도 사랑을 생각해볼 수 있구나 싶었네요.”
*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카카오임팩트와 다음세대재단 공동 주최∙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