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이번 행사의 참가자 ‘이효정’ 님 작성한 후기 입니다.>

 

수고했어 오늘도

이효정/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요즘처럼 제값을 못 하는 고생길이면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다. 뭣도 모르고 계속 샀다간 주머니 털리는 것은 기본, 몸과 마음도 탈탈 털리는 호구 신세를 면치 못한다. 교환, 환불도 어려운 이 고생길을 기꺼이 구매한 청년들이 11월 16일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모두극장에 모였다.

각자 지역에서 꿈꾸던 문화를 만들고자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컨퍼런스 <왜 그땐 잘 안됐을까?>. 조금 속상하지만 울림이 있었던 4명의 지난 행보를 따라갔다.46187541761_1f2ff901f3_k

 

우리 마음은 어느 시점에 있었나

첫 번째는 2011년 영등포 ‘달시장’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시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라는 가치관을 실현했던 청년 기획자 그룹 ‘방물단’의 사례였다. 지난 6년간 방물단은 지역 주민들이 쉽고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거주지 기반의 시장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그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해내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고정 팬층을 확보할 만큼 그들의 활동은 탄탄한 듯 보였으나 매 시기 넘어야 할 현안들과 지역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이슈를 만족시키는 데 점점 힘에 부쳤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닥칠 위기를 대처할 근본적인 묘안이 없음을 인정한 그들은 결국 해체했다. “우리는 알았어요. 앞으로도 우리는 현재의 기획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요.”44370204170_80a283f72e_k

전 방물단 대표, 현 연남방앗간 운영매니저 이호진

전체 사례 중 첫 번째로 접한 사례가 가장 완성도가 높아 보였기에 해체 결정이 매우 아쉬웠다. 지자체의 지원 사업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청년 활동과 달리 방물단은 일찍이 용역 사업으로 전환하여 자체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냈다. 나름의 자생력을 갖춘 것처럼 보였지만 기획단은 현재의 안주에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이 바라는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자 내공을 더 쌓아 이른바 선수가 되어 언젠가 다시 모일 것을 약속했다. 조직의 시작부터 해체까지 오로지 기획단 내에서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점이 멋지게 느껴졌다. 두 걸음 나아가고자 전략적으로 한 걸음 물러난 사례였다. 미래의 행보를 고민하는 첫 번째 사례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바람직한 태도이긴 하나 활동을 지속시키는 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아님을 두 번째 사례를 통해 느꼈다.

 

록 음악과 스케이트보드를 사랑하며 이를 통해 천안에 청년들의 서브컬쳐를 만들려는 1인 조직 ‘룩비욘드(LOOK BYND)’. 일찍이 좋아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일과 분리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철저히 취미로 즐겼다. 본업과 별개로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 천안 지자체의 문화예술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산 지원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공연을 기획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예산 지원을 받던 때와 달리 공연 기획을 위한 자부담의 비중이 매우 커졌고,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만족할 만큼 양질의 공연을 기획하기엔 무리였다. 인상적인 점은 한계를 경험한 그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지원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46136903412_247ed98f01_k

천안 룩비욘드 대표 하형권

대부분이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룩비욘드는 다르게 접근한 것 같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부터 출발했다. 전자는 과감하게 포기하고(대부분 이 전자를 포기하지 못해서 고생길 당첨) 후자에 에너지를 쏟았다. 이런 가지치기가 가능했던 것은 언제나 ‘재미’가 최우선의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기획자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 딱 거기까지만 합니다.”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행복해 보여서 혼란스러웠다. 부러웠지만 역시나 따라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 태도를 내 삶에 녹이기엔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지 못했어도 즐거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을까?’,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돈은 다른 데서 벌어야 하나?’,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토끼를 다 놓치게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나처럼 원주에서 이런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한 청년들이 이어서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우리는 배고프다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청년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밥벌이로 연결할 수 있는지 늘 고민한다. 답이 없는 물음이 반복되는 삶은 정말 피곤하다. 그 피로감을 해소하고자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선 청년들이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사례는 공통으로 원주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청년들의 시도였다. 작년 여름, 원주에서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돗자리 하나만 가지고 종일 놀고, 먹고, 쉰다’라는 컨셉의 축제가 열렸다. 이름하여 ‘2017 원주 돗자리 페스타’. 나를 포함하여 원주의 청년문화 결핍에 목마른 친구들이 모였던 만큼 아이디어와 열정은 넘쳐났다. 이 지나침이 독이 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키워드만 ‘돗자리’일 뿐, 각자 꿈꾸는 축제의 모습이 서로 달랐다. 행사의 방향을 통일시키지 못한 데다 핵심 컨셉도 구체화하지 못한 채 각자의 아이디어를 계속 추가하는 식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제한된 기간, 인력, 재원 앞에서 우리는 계속 부족함을 느꼈다. 겨우 채우면 또 다른 곳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 초 예정되었던 행사가 디데이 하루 앞두고 연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후 행사는 무사히 해냈지만 재정비하는 동안 기획단은 이미 많이 지쳤다. 행사가 끝나자 앓던 이를 뽑아낸 기분이었다. “기획 당사자인 저는 행복했는데 다른 기획단도 행복했을까요?” 글쎄…. Yes는 아닌 듯.44370228900_84c3faedd7_k

원주 돗자리 페스타 기획자 김누리

2017 원주 돗자리페스타는 2018년에는 열리지 않았다. 추정컨대 지난 행사에서 피로와 좌절감을 상쇄시킬 만큼 성취감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제2회로 연결되지 못한 핵심 요인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지역 내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전적으로 개인의 몫인가? 행사의 존폐 위기가 기획자의 자질, 역량 등 개인적인 요인만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네 번째 사례를 보자.

최근 원주에는 청년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여 청년들에게 다양한 문화 활동 기회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지원 시스템은 ‘G지대 프로젝트’이다. 원주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청년들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지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올해 3년 차를 맞이한 본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은 평소 원주에서 하고 싶은 전시나 공연, 포럼 등 다양한 축제를 기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청년 시도의 집성체인 ‘청년쾌락’에서 그들이 이룩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획 의도나 취지는 매우 좋다. 확실히 이전까지의 원주에서 접할 수 없었던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운영을 해보니 역시나 이면이 존재했다.46136920382_52ec5fd4a5_k

청년쾌락 기획자 노주비

청년들의 행사 기획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반대에 자주 부딪혔다. 주된 이유는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 (과연 기획 당사자가 만족하는 방향일지는 모르겠으나) 수정 과정을 거쳐 겨우 실행 단계에 도달해도 쉬운 것은 없었다. 원주의 청년 정책을 점검하는 포럼을 계획했으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을 섭외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기존 절차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관계자들을 모두 섭외하기는 하였으나 직접 청년들의 피부로 와닿는 실질적인 수확은 없었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 원론적인 다짐만 들었다. 그 다짐마저도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포럼은 단순히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청년 정책, 지금까지 뭐 했습니까?”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 다음으로 이어질 기회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행사를 기획한 감각을 유지하고 계속 자신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현장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는데 그런 현장에 투입될 기회가 적었다. 혹은 현장조차 없기도 했다. 1년 프로젝트만으로 청년들이 꿈꾸는 원주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2년, 3년 차 시도를 하고 있지만, 원주 청년들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하기 이전 시절과 비교했을 때 현재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여전히 답을 내지 못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서 살펴본 4가지 사례는 지역, 콘텐츠, 방향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 이슈가 있다. ‘재미 그리고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불안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44370254030_65c43520d2_o

문화를 기획하는 당사자 스스로가 재미를 느껴야 한다. 신나서 하게 만드는 콘텐츠만이 덜 지치고, 결국 더 나은 시도를 하도록 동기 부여를 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보장되어야 활동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일관적으로 나왔다.

문화예술 분야에 발을 들인 청년의 대다수는 지자체의 지원사업을 많이 활용한다. 매해 문화예술지원사업의 규모, 범위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쉽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원 사업은 양날의 검 같다. 비교적 쉽게 재원은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획의 경험을 한 것은 좋지만 근본적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우므로 자생력을 기르려면 장기적으로는 지원 사업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지원 사업의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원주 청년들은 지원 사업에 상당히 의존한다.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용역 사업 분야로 바로 뛰어들기엔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랄까. 사업 운영에 필요한 기본 행정을 비롯하여 실제 사업을 운영하면서 겪게 될 다양한 시행착오에 대처할 인적 네트워킹, 인프라도 매우 빈약하다. 누군가는 이런 것들은 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라 하지만 사전에 언급했듯이 원주에서는 충분히 현장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적다.

청년에게 지원 사업을 대체할 다른 선택지가 아직 원주에는 없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 자리에서 이런 속사정을 들어야 할 진정한 누군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또한 현실이다.

원주 청년들은 이상적인 지원 사업의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기획서 작성이나 회계 등 사회초년생이 어려워하는 분야에 관한 교육 지원, 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 지원, 사업 실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기에 대해 자문할 수 있는 위기 대응 매뉴얼 지원 등. 기존에 예산만 지원하는 단일한 지원 방식이 아닌 지원 포맷의 유연성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작년 12월, 문화예술지원사업의 새 틀을 짜고자 원주문화재단이 기획한 자리 <원주문화포럼>에서 나온 이야기와 거의 일치한다. 1년이 지난 지금, 활동가들은 여전히 같은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지원 사업을 두고 왜 우리는 늘 제자리걸음일까.

 

수고했어 오늘도

다양한 지원 방식을 요구하는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실패를 향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강조하는 사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란 우리는 꿈에서조차 손익을 따지게 되었다. 이익은 둘째치고 손해라도 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내면화되었다. 왜 지원 사업에만 의존하냐고? 현실적으로 그게 제일 안전하니까. 더 큰 도전을 하기엔 솔직히 너무 겁이 나니까.31248307497_5be0042173_o

지역 내 문화를 만들고자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녹록지 않았음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한 이 자리에 끝내 시원한 결론은 나오지 못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앞으로도 수고하라는 말이 오갔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곡이 생각났더라면 그들에게 들려주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각자 치열하게 사느라 피곤한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 길이 내 길인지 니 길인지, 길이기는 길인지, 지름길인지 돌아가는 길인지는 나도 몰라. 너도 몰라. 결국에는 아무도 몰라.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너처럼 아무것도 몰라.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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