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초에 시민행동의 게시판에 썼던 글인가봅니다.
현재의 제 에피소드 블로그의 맨 첫번째 글을 장식하고 있는 글인데요.
지금 읽어보니 이곳저곳 참고해서 적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정보연대 SING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정보트러스트운동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과거를 지우지 말기운동”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네요. 참고삼아 한번 보시고, 2002년의 생각을 지금의 생각으로 서로
대체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어떠실런지.

Yahoo!의 성공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하면 ‘Yahoo!’였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Yahoo!가 내 브라우저의 첫페이지이다. Yahoo!는 인터넷과 거의 동일개념이었다. 왜냐하면 Yahoo!는 초창기 인터넷이 개척자였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향유하고 있던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Yahoo!는 고속도로의 표지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일약 스타가 되었다.

아시다시피 Yahoo!는 스탠포드 전기공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제리양(Jerry Yang)과 데이빗 파이로(David Filo)에 의해 탄생되었다. Yahoo!의 탄생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리 양은 1994년부터 인터넷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이트를 찾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제리양의 WWW 가이드”를 선보였다.그 디렉토리 서비스가 오늘날의 Yahoo!를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검색엔진들과 달리 Yahoo!는 사람들이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가상의 공간에 흩어져 있는 웹사이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해놓았다. 즉, 초창기 Yahoo!는 뭐 대단한 정보통신기술이 아닌 인간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산물이었던 것이다.

Yahoo!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망망대해 바다를 건넌다고 가정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배일 것이요. 그 다음이 뱃길을 알려줄 항해사일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인터넷이라는 넓은 바다를 휘젓고 다닐 브라우저는 개발되어 있는데 항해사가 없었다. 필요한 것은 자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명해보일런지 몰라도, 중요한 것은 항상 그렇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바로 Yahoo!와 같은 디렉토리 서비스였다. 때문에 본인이 인터넷을 제일 처음 경험하면서 마주보고 앉은 웹사이트가 Yahoo!였다. 그때 당시엔 그게 홈페이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웹 브라우저와 한몸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1995년, 국내 시민사회운동의 인터넷 이용

자, 그렇다면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인터넷은 어떻게 출발했을까? 본인이 1990년도부터 현재까지의 신문에서 인터넷과 시민운동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았는데 꽤 많은 기사들이 출력되었다. 물론 대부분은 1998년 이후의 기사들이다. 과거로 가보자. 1995년 5월 16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외국 진보단체와 인터네트 대화 쉬워진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만약 1995년 5월 이전에 사회운동진영에서 인터넷을 공식적으로 — 혼자 머리 속으로 생각한거 말고 — 고민한게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시민운동진영의 초기 인터넷 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면서 Yahoo!를 살펴본 것은 시민운동진영도 Yahoo!의 출발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정보동아리 싱(SING)에 대한 기사인데 당시 SING이 인터넷에 외국의 시민단체나 진보운동단체들의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프로그램 SING을 올려놓은 것이다. SING에 접속하면 — 당시 홈페이지 주소는 http://power1.snu.ac.kr:8080/ 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접속하면 찾아볼 수 없다. — 인권, 노동, 환경, 진보, 성, 소수민족 등의 문제를 다루는 각국의 단체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인터넷으로 캠페인도 하고, 이메일진도 발행하고, 직접 모금도 진행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인터넷에 해외 단체들의 목록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일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의 근본적인 기능이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민사회단체의 인터넷 이용이 해외 단체 웹사이트와의 연결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른다.커뮤니케이션을 이루기 위해,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게 바로 상대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당시 SING의 회장이었던 이혁씨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외국 운동단체들과의 신속한 정보교환을 위해 ‘싱’을 만들었다. 앞으로 국내 학생운동 정보를 외국에 알리는 창구로도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아쉬운 과거의 기록

본인은 SING을 1990년대 말에 인터넷상에서 만난 적이 있다. 본인의 기억으로 SING은 http://www.sing-kr.org 라는 도메인명으로 서비스를 했는데 그때는 해외 단체들에 대한 디렉토리 서비스나 단체 소개보다는 정보운동 쪽에 초점이 많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후 SING에 대한 공식기록은 1998년 4월, 민주와진보를위한지식인연대, 참세상, 통신연대 등과 함께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건설을 위한 협의모임을 진행하고, 1999년 2월, 지적재산권과 독점문제 토론회를 여러 정보운동단체들과 주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자료 참조)

인터넷의 웹사이트는 어찌보면 출판물과도 비견될 수 있다. 당시의 사회가, 시민들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때로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의 요구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인 것이다. 또 몇 년 후에 살펴봤을 때 당시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되돌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웹사이트는 구판과 신판을 비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새로운 것이 과거의 것을 완벽하게 대체해 버리기에.

이제는 인쇄물을 따로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편지는 이메일로 대체되고, 자료집은 PDF화일로 대체된다. 80년대의 역사를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당시 현장에 뿌려졌던 유인물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서버라는 공간에 운동의 기록들이 모두 남겨져 있기 때문에 따로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모든 기록이 한 곳에 남겨져 있다는 것은 한꺼번에 사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체 홈페이지가 처음 사이버공간에 떴을 때 그 흥분을 기억할까.. 사람들은… 우리는 그 당시 사이버라는 이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우리의 홈페이지를 첫대면 했을 때의 흥분에 대한 기억은 영원할 수 있지만 홈페이지 자체에 대한 기억은 현재로선 없다.

1995년 SING이 인터네트 — 당시 신문은 인터넷을 모두 인터네트라고 했다 — 를 통해 해외 단체와의 정보교류를 꾀하고자 했던 그 고민을 사이버공간에서 직접 한번 보고 싶다. 제리 양이 만든 “제리양의 WWW 가이드”를 보고싶은 것도 물론이다.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의 첫 번째 버전의 홈페이지도. 아무래도 “과거를 지우지 말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보다.

by choa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