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gro.com


인터넷 세상을 가리켜 ‘국경의 장벽이 없는 공간’이라고들 하지만, 이는 절반만 옳은 얘기다. 국경을 구분하는 물리적 담벼락은
없지만, 언어의 장벽은 웹 세상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여권도 비자도 없이 외국 유명 사이트를 제집처럼 드나들면 뭣하나. 낯선
외국어로 도배된 웹사이트 앞에선 눈뜬 장님이나 다름없는 걸.


자동번역 SW를 돌려봐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아무리 정교해도 기계적 번역이 언어의 오묘한 조합을 어찌 다 이해할 것인가. 두터운 언어의 벽을 뚫으려면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링그로‘는 외국어 공부를 위한 온라인 도우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온라인 사전’인데, 서비스 방식이 꽤 독특하다. 웹사이트 주소만 입력하면 사전을 따로 띄울 필요 없이 해당 사이트에 사전을 통째로 붙이는 신개념 서비스다.


이런 식이다. 링그로 메인화면에서 번역을 하고픈 외국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대상 언어(예컨대 프랑스어→영어)를 지정하고 이동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자동으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하는데, 이제 웹사이트 내용을 읽다가 아무 단어나 마우스로 클릭하면 뜻풀이가
풍선창으로 바로 뜬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를 예로 들어보자. 링그로 메인화면에서 <르 몽드> 웹주소(http://lemonde.fr)를 입력하고 언어 설정을 ‘French→Engligh’로 지정한다. 이제 <르 몽드> 웹사이트로 이동해 아무 단어나 마우스로 눌러보자. 해당 프랑스어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가 풍선창 형태로 표시된다.


링그로에서는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폴란드어 등 6개국어를 지원한다. 외국어 사전이 아니더라도 영영·독독·불불사전 등 언어별 ‘국어사전’으로 쓰기에도 좋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 사전은 빠져 있다.

웹사이트에 통째로 붙이는 사전이 번거롭다면, 전통적인 방식의 단어사전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링그로 사전
에서 원본 언어와 대상 언어를 지정하고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뜻풀이가 뜬다. AJAX 기술을 이용한 단어 검색창은 글자를 한
자씩 입력할 때마다 검색결과를 실시간으로 찾아 뿌려주는데, 이를 ‘워드 휠'(Word Wheel) 방식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링그로의 진짜 가치는 다른 데 있다. 링그로는 이용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만들고 수정하는 ‘열린 사전’을 지향한다.
단어를 검색하다 더 적합한 단어나 매끄러운 번역이 있다면 누구나 즉석에서 추가할 수 있다. 틀린 내용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자동으로 수정되고 업데이트된다.


신조어의 경우 주류 사전에선 복잡한 단계를 거쳐 등록되거 아예 누락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링그로에선 금세 새로운 뜻이 다양한
언어로 등록된다. 익명의 수많은 이용자이자 번역가들이 조금씩 지식을 기부해 링그로 사전의 어휘량을 축적해나간다. 주요 단어의
발음을 음성파일로도 들을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참여형 사전 ‘윅셔너리
‘(Wiktionary)와 비슷하다.


달리 정하지 않는 한, 링그로의 모든 서비스는 평생 무료로 제공된다. 개발사는 “인류의 소통에 필수적인 지식과 정보들은 근본적으로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운영 원칙을 밝혔다.

“우리는 사업을 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우리 계획은 어학 학습을 위한 최고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돈을 벌려는 것이다. 사전 자체는 언제나 무료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될 것이다.”

링그로의 모든 컨텐트는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BY-SA)의 CCL과 GNU 자유문서사용허가(GFDL) 조건에 따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참여형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도 지난 11월30일 기존 GFDL에 더해 BY-SA의 CCL을 도입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그저 재미있는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링그로가 보여주는 가능성이 적잖다. 이들은 ‘공짜’와 ‘수익 창출’은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식에 도전장을 던졌다. 예전같으면 손가락질할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들의 도전 결과를 주시해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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