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마인드를 바꿔야 매력적인 콘텐츠가 나온다.

사실 우리는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수없이 해왔다. 수평적 네트워크, 자발성에 기초한 운동, 눈높이 운동 등등. 하지만 이야기하고나면 그만이다.
실행해보지 못했다. 훈련이 덜 되었던 탓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의 방식이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습성이 찌들어있었던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성명서
하나 작성하고 현안대응했다고 착각한다.
 보도자료를 언론사 팩스로 보내놓고, 당연히 보도되기를 기다린다.
 의견서를 내면 그게 굉장히
중요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한다.
 뉴스레터 발송하는 것으로 우리가 알릴 건 다 알렸다고 생각한다.
 메일발송 프로그램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항의메일을 보내주기를 기다린다.
 배너달기가 굉장히 의미있는 홍보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홈페이지 기사 조회수가 그
기사를 모두 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퍼포먼스하고 그게 신문사진에 나면 즐거워한다. 무엇이
바뀌었지?

사람들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우리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저 수준에서 머무르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해도 우리의 홈페이지를 생동감넘치고, 재기발랄하고, 사람들로 북적북적대는 곳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콘텐츠를 이야기하기 전에 마인드부터

홈페이지에 담아낼 수 있는 컨텐츠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시민운동을 하는 우리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홈페이지를 개편할때쯤 되면 같이 일하는 상근자들이 요구한다. “성명서 올리면
메인에 바로바로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해줘”라거나 “html 코드를 모르더라도 수정할 수 있게 해줘” 혹은 “우리 부서 게시판이나 자료실은
이러저러하게 만들어줘”…. 라고.

우리의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자. “그건 당신한테 편하고 좋은 홈페이지고, 우리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건 뭐지?”아.. “네가 정말 원하는게 뭐야?” 흔히 컨텐츠가 좋고 풍부한 홈페이지에는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런치만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한 컨텐츠로 무장한 곳이라도 파리만 날리는 곳이 있고, 게시판 하나 달랑 있는 허접한
사이트라도 북적북적대는 곳이 있다. 시민단체의 컨텐츠라는게 사람들이 연예오락 뉴스처럼 안보면 다른 사람과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내용들이 아니다. 숙제하러 오는 중학생이나 레포트 내러오는 대학생들, 다른 단체의 시민운동가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시민단체 컨텐츠를 기다리고
찾아보고 싶고 읽어보고 싶겠는가?

첫 번째 고려해야 할 점은 현재 수준에서 우리가 생산해내는 컨텐츠의 내용은 재미없다는 사실이다.
재미없다는 현실로부터 출발해보자. 재미있다는 표현을 매력적이다라는 표현으로 좀더 발전시켜보자. 그렇다면 매력적인 켄텐츠를 우리가 자체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은 과연 있는가? 매력적인 컨텐츠를 얻기는 쉽지 않다. 매력적인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비용(시간+인력+아이디어)이 든다.

상업적 사이트를 제외한 성공한 비영리 사이트(정치인, 비영리단체)에서 보여지는 컨텐츠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정직함이다. 비영리단체의 경우 정직함으로 성공한 예를 아직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성공한 정치인 사이트를 두곳만 예를 들어보면
미국의 제시 벤추라와 한국의 노무현.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정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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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en.wikipedia.org/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인 제시 벤추라는 주지사
선거에서 ‘정직’을 모토로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단돈 600달러로 구축한 웹사이트를 통해 티셔츠를 팔고 선거자금을 모았다.
노무현도 정치자금 안받겠다고 하고 100만명에게 100억원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정직 모토는 정치자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한 켄텐츠로 올려놓고, 일일브리핑이나 동영상 인사말을 통해
조중동으로부터 얻어맞은 것을 네티즌들에게 하소연하고 오해있는 점들은 양해를 구함으로써 솔직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성공한
정치인들의 인터넷 전략은 네티즌들에게 논리와 명분으로 설득하기 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언어와 컨텐츠로 네티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정치인들의 웹사이트는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 구축이라는 명제를 수행하기 위해
‘정직함’이라는 요소와 ‘그 정직함의 일관성’이라는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이성진 칼럼 – 시작되는 온라인 정치캠페인) 우리 조직에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좀더 진보된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기 전에 일단은 홈페이지의 각종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스크린하고 이에 대한 답변들을 성실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50%는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재치있는 답변과 성실함으로 회사 이미지를 제고하고 수백억원의 홍보효과를 본
시스코라는 바퀴벌레 잡는 회사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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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서의 재치있는 답변으로 재미있고 친절한 회사이미지를 구축한 세스코

최근엔 답변 보다는
댓글 기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댓글,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나보다.)
댓글은 일종의 코멘트로서 100자논평쓰기, 토막의견쓰기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답변과 달리 이 댓글은 해당
글 아래 바로 붙는다. 컨텐츠의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 댓글은 편리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남이 올린 글을 보면서
‘한마디’ 툭 던지고 가는 사람, 그 사람의 멘트에 또 한마디 툭 던지는 사람, 일종의 화장실 낙서문화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화장실 낙서문화의 인터넷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댓글이 사실상 본문보다 더 재미있고,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군에
가는데 총을 사가지고 가야 하나요?”라는 글이나 ‘조리퐁 한봉지에 들어있는 조리퐁을 세어봤더니 몇 개더라’라는 게시물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준다. 댓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컨텐츠가 되었다.

이 댓글기능보다 좀더 진보한 것이 위키위키라는 개념일 것이다. 여기엔 어느
것이 원 게시물이고 수정본인지, 답변들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한 사람이 게시물에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은 [Edit Text] 버튼을 눌러서
전체를 수정해 버릴  수 있다.

완벽한 공동작업인데 이 위험천만한 일을 사람들은 실험하고 있다. 너무 형식적인 면에 치우쳐서는
안되겠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이 내용의 질과 양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좀더 진보된 생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8. 정직한 콘텐츠와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매력적인 컨텐츠로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함이란 무엇일까? 그건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조직내부의 정직함과 시민운동가들의 정직함. 조직내부의
정직함을 보여주는 것들은 의사결정, 재정, 제반 정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가 월요일 아침마다 모여서 사무국
회의때 한 이야기들, 운영위원회 회의때 나온 이야기들, 우리가 그때그때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아이디어들을 있는 그대로 써서 공개하면 안될까?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정보에 마음을 열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운동가들의 정직함을 보여주는
컨텐츠는 어떤 것일까? 그건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로 표현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는 웹칼럼니스트 이성진씨가 썼던 말인데 “컨텐츠를
생산하는 제작자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추출 가능한 컨텐츠”를 말한다) 이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를 이야기하면서 이성진씨는 두가지 예를 들었다.

하나는 정치인 홈페이지를 컨설팅해주면서 제안한 것인데 정치인 홈페이지의 컨텐츠라는게 정책자료나 보도자료, 동정 외에는 별반 다를
게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컨텐츠를 만들 시간이나 열의가 부족하고 이를 위한 전문인력 비용도 부담되기 때문에 정치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거기서 컨텐츠를 추출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오게 된게 ‘모 의원의 독서 메모’라는 메뉴다. 이 코너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채워진다.
간단하지만 꾸준히 기록하게
했는데 다른 컨텐츠에 비해 훨씬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코피티션 120쪽에서 128쪽까지 읽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최근의 경제현상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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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nowcat.co.kr/

다음으로 예를 든 것이 스노우캣이라는 사이트이다. 필름
2.0에 카툰을 연재하는 카투니스트의 개인 홈페이지인데 그림일기와 사진게시판 등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컨텐츠를 올려놓았음에도 스노우캣 홈페이지는
랭킹닷컴의 순위 42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를 이성진씨는 독자들을 위한 기획적 측면과 라이프스타일이 잘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노우캣,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사이트가 되어버렸지만)

현재 단체의 홈페이지의 [커뮤니티게시판]과 [나의게시판]은 일종의
이런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컨텐츠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인기있다고 하는 [좋은엄마, 나쁜엄마], [아이를 키우며],
[농주의 귀농생활]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게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를 상근자들
개개인이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시민운동가로서의 정직함과 진솔함, 고민들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칼럼식의 글보다 일기식의 글, 한달에 한두 개
올리는 것보다 매일매일 짤막하게 올리는 글들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위
커뮤니티는 현재 에피소드라는 사이트로 발전하여 운영되고 있다.)

9. 전통적인 여론 형성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여론형성 방식, 언론을 통해 국민의 여론을 움직이고, 단체의 지향을 실현시키려는 방법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2002년은 전통적인
여론형성 방식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해가고 있다는 흐름을 일깨워주는 한해였다. 최세진씨가 지적했던 것처럼 2002년 사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이슈들은 대부분 인터넷상에서 여론화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을 직접 상대한다고 했지만 사실상의 홍보와 선전은 對언론에
치우쳐 있었다. 언론이 여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던 시대는 갔다. 언론의 여론형성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기능은 약화되었고,
여론을 반영하는 기사, 특히 온라인 여론을 따라가는 기사들의 비중이 많아지고 있다. 2002년 대선을 조중동 對 인터넷의 대결이라고 할 정도로
인터넷 여론의 힘은 커졌다.

초창기에 인터넷에 열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 미디어적 속성 때문이었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업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현실적으로 오마이뉴스는 장미빛 전망을
현실화시켜준 적절한 예이다. 오연호 대표이사는 대선이 끝난 시점에 “언론권력 교체되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 아니 그 이전에 기자가 누구이고 기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공식부터 파괴했다. 그들은 독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뉴스 생산자가 되었다.”


정보의 생산은 독점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이러한 인터넷의 기본명제를 잊고 있다. 100% 그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민단체는 정보의
생산자였고, 인터넷은 유통업자였고, 회원과 네티즌은 소비자였다. 21세기는 정보에 의해 모든게 좌우된다고 했거늘 시민단체들은 분에 넘치게 나만이
정보 생산자임을 자처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작고, 질은 네티즌의 눈높이에 맞추질 못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보
생산자의 역할을 회원에게, 네티즌들에게 넘겨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홈페이지의 탑공간을 네티즌들에게 넘겨주기에는 그들의 정보에 대한
신뢰가 너무 약하고, 과연 그렇게 우리 집 공간을 내주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3년 전, 위험하게
똑똑한 조갑제를 상식을 갖춘 수많은 네티즌이 이겼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이런 흐름은 큰 강물이 되어 대세를
이루고 있다. 3년전 산속 계곡에서 물줄기를 따라 서서히 내려오고 있던 시미단체들을 누군가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까지 데려다놓아 버린
것이다. 미쳐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바로 네티즌들이. 그래서 허망하다고 해야 하나. 다시 계곡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바다에 빠져죽을
수도 없고, 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10. 리눅스형 시민운동을 하자.

마침 리눅스형 리더십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노무현 당선자를 두고 이렇게 표현한단다.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 조금씩 발전시키고 함께 이뤄나가는 리더십”이 바로 리눅스 리더십이란다. 위 문장에서 ‘리더십’이라는 말만
‘시민운동’으로 바꿔보자.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참여해 발전시키고 함께 이뤄나가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위키백과사전

단체의 창립 초기에 리눅스형 운동과 MS형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걸 다 만들어놓고 ‘자 이런 운동 만들어놨으니까 너그들은 여기 참여해봐라’라고 주장하는 MS형 운동방식과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이런 운동을
할려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진행하면 좋을까요”라고 제안해나가는 리눅스형 운동 말이다.

수평적 네트워크와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시민운동은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위에서 말한 리눅스형 운동을 말한다. 리눅스 정신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
그리고 공동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공동으로 이용한다는 공유의 정신에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시민운동은 이러한 정신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운동의 정신이자 원칙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온 인터넷의 힘,
네티즌의 힘, 가상공간의 역동성은 우리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생각을 디지털 기호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은 공상에 불과하다. 공상도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는 디지털 기호로 — 그것이 텍스트든, 영상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 표시될 때만
공상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시민들을 강당에 앉혀놓고, 거리에 불러놓고 마이크잡고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났다.

마이크줄을 타고
앰프로 전달되는 아날로그 소리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흘러다니지 않는다. 토론회, 강연회, 집회와 시위 때 한 이야기를 디지털 기호로 전환시켜서
유통시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는 그것은 ‘하지
않음’으로 기록된다. 다시금 디지털 네트워크에 맞는 운동방식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체크해보는 기회를 갖자. 그동안 우리의 행적을 드러내면서.

<시민운동, 인터넷에서
살아남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