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추경예산안 관련 논란이 한참 진행중이죠. 제가 있는 시민행동에서도 논평을 내고 포스팅을 올리기도 하고 관련활동을
진행중이랍니다. 어제 보니까 기획재정부가 추경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아예 홈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었더군요. 오, 이런 친절한 모습!
반가워서 얼른 들어가 살펴보았습니다.

경제회복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하는 ‘일자리 추경예산’ 홈페이지 메인화면
첫인상은 짧은 시간안에 핵심만 모아서 잘 만든 홈페이지로 보여요. 그런데 어쩐지 아무리 커서를 움직여봐도 텍스트가 하나도 걸리지
않는게 흠, 역시 그런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깔끔하고 예쁜 홈페이지를 굳이 싫어할 필요는 없지만, 멋지게 이미지로 도배한
홈페이지를 만날 때 마다 저는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편인데요. 화려하게 치장은 했지만 사실 내용은 거의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파일에 정보가 다 담겨있는데 무슨 말이냐고요? 그게, 시각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지만,
텍스트를 위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기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스크린리더들은 이런 이미지파일에서 어떤 정보도
읽어내지 못하거든요.
그럼 재미삼아^^ 그런 경우 이 홈페이지가 어떻게 보이는지, 제 컴퓨터의 파이어폭스에 깔아놓은 Web Developer를 통해 이 이미지들을 한번 걷어내볼까 해요.

Web Developer로 이미지를 걷어내봅니다.

백지가 되어버린 메인 페이지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니 페이지는 백지가 되고, ‘기획재정부’라는 타이틀과 플래시로 걸어둔 메뉴만이 남아 있습니다. 플래시
메뉴를인식할 수 있는 정보도 없고, 메인 페이지 곳곳에 링크와 이미지맵으로 연결시켜놓은 여러가지 정보들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요.
메인 페이지의 소스를 열어보면, 실제로 몇개의 링크와 이미지맵을 제외하면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흔한 ‘alt’도 ‘title’도 없이, 이미지맵의 링크설명만이 존재하네요.

소스는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럼 서브 페이지들은 어떨까요.
메인페이지에 비해서는 몇가지 정보가 존재하긴 하는데, 그나마 메뉴 제목과 페이지 제목이 일치하지 않고, 내용은 선언적인 몇 줄의 주장이 다입니다. ‘왜 필요한가’라는 페이지를 텍스트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내용
- 경제위기 조기극복을 통한 일자리 유지·창출과 민생안정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 입니다.
- 이번 추경의 최대 목표는 첫째도 일자리요, 둘째도 일자리 입니다.
- 추경규모 28.9조원! 경기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 복지전달체계의 철저한 점검을 통해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멋드러지게 만들어놓은 그래프들과 1, 2, 3,.. 으로 이어지는 설명들은 어디에서도 그 존재를 찾아볼 수가 없네요. 그래도 스크롤압박 없는 세줄요약의 미덕에는 충실하다 할까요. ^^
이런 홈페이지는 사실상 홈페이지라 하기 보다는 리플릿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속된 말로 ‘찌라시’ 홈페이지라고
하죠.) 텍스트는 텍스트로, 이미지는 이미지로 존재하되 대체 텍스트가 제대로 붙어있어 전체가 하나의 문서로 역할해주는 것이
홈페이지가 할 일이 아닐까요. 그냥 PDF로 리플릿 만들어 뿌리면 될 것을 돈 들여서 이렇게 홈페이지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을란지.
아니나다를까 메인페이지에 PDF 다운로드 버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쇄용으로 만든 리플릿을 그대로 PDF로 올린 것이라 이 역시
어떤 텍스트 정보도 담고 있지 않은 이미지 100% PDF 파일이로군요. 이 파일로는 pdf리더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링크해둔 자료는 모두 hwp파일로, 한글과컴퓨터의 유료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보기 힘든 포맷의 자료들
뿐입니다. (물론 뷰어가 따로 있고, 유료 프로그램이라 하기 무색할 정도로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긴 합니다만…^^;;;) 언젠가 정부에서도 hwp
일색이 아닌 공개문서형식odf 을 도입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 꿈에서 들은 이야기인지…
결국, 이 홈페이지는 누군가 읽어주지 않는 이상 시각장애인은 그저 선언적인 필요성만을 들을 뿐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고,
검색엔진들도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기이한 홈페이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다못해 내용을 어딘가 인용이라도
할라치면 이미지 파일을 캡쳐하거나 다운받아 잘라서 붙여야 할 상황이니 참 답답하네요.
이런 문제는 꼭 정부 홈페이지에서만 생기는 건 아닙니다. 각종 기업의 사이트들도,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만들었던 홈페이지들도 부분적으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구요. 그래도 그동안은 몰라서 못한 게
용서가 되었지만 모바일 웹의 성장세를 보면 아마 조만간 그렇지 않은 상황이 올 것 같습니다.
무작정 겉 포장만 멋있게, 예쁘게 만드는데만 골몰하지 말고 웹 접근성을 고려한 홈페이지, 공개문서형식.. 이러한 문제들을 조금씩이라도 고민하면서 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