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독성이 뛰어난 글은 어떤 것일까? 아래 재미있는 예가 있다.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 Dick)에 나오는 첫번째 문단이다.
” 내 입 안 가득 우울한 공기가 가득찰 때마다, 내 영혼 깊숙이 축축한 11월의 기후가 자리할 때마다, 장의사의 집 앞에 발걸음이 절로 멈춰질 때마다, 장례식 행렬 맨 뒤에서 통곡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리고,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을 밀치고 쓰러뜨리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망을 절제하기 힘들 때마다, 나는 지금이야 말로 바다로 나가야 할 때란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글을 Kathy Henning 이라는 웹칼럼니스트가 아래와 같이 바꿔 버렸다. 원문이 가지고 있던 웅대함이라든가 철학적인 멋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이 칼럼니스트는 “인터넷은 철학과 웅대함으로 의사소통하는 곳이 아니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Kathy 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칼럼니스트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얼마든지 철학적인 이야기를 웅대하게 나눌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철학과 웅대함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잡담과 보기 쉬운 글들만이 난무하는 인터넷이란 재미없는 싸구려 잡지책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다. Kathy가 의도한 것도 그것이 아닌 것처럼.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대중적 소통의 공간에서 글쓰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Kathy는 모비 딕의 첫 번째 문장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나는 바다로 나가야 한다.
내가 우울하고 고독할 때,
장의사의 집 앞에 서있을 때,
장례식을 뒤따라 갈 때,
사람들을 밀치고 쓰러뜨리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단체 소개문
” 만일 여러분이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찾으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수익성 높은 고객 관계를 창출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술적 리더쉽과, 전문적 금융 서비스, 그리고 최상의 고객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파트너 관계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위 글은 미국의 한 기업 홈페이지의 소개페이지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기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위의 예는 미국의 대학교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수잔 솔로몬이 “지긋지긋한 회사소개는 이제 그만”이라는 칼럼에서 소개한 정말 지긋지긋한 회사 소개의 사례이다.
시민단체 들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은 어떤가? 단체 소개문구는 또 어떤가? 아름다운 공동체, 비판과 반대를 넘어 대안을, 시민의 참여로 독립적인 운동을,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과의 연대를 통해 등등. 좋은 말들이다. 이러한 단체 소개문구는 봐줄만 하다. 단체들이 홈페이지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올려놓은 사업계획서, 보도자료 등은 우리조차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홍보브로셔를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전문가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고,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단체가 하는 일을 좀더 쉽고 명확하게 소개할 단어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브로셔를 수천부씩 찍고, 수백만원의 예산을 아낌없이 지출한다. 몇 달 후, 홍보브로셔는 사무실 한켠에 쌓여만 간다.
단 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 중에 홈페이지의 단체 소개 문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단체가 2003년 하반기에 홈페이지를 개편한 이후 두달동안 가장 많은 클릭수를 기록한 페이지는 바로 “단체 소개 페이지”이다. 두달 동안 단체 소개 페이지의 조회수는 15,000클릭에 달한다. 단순하게 비교해본다면 홍보 브로셔가 15,000장 유통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홍보 브로셔는 조직 책임자의 최종 검토까지 거치면서 신경 쓰면서 홈페이지의 단체 소개페이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딴지일보식 글쓰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 식의 글쓰기가 각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한가지! 네티즌들의 눈높이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졸라’와 ‘씨바’로 표현되는 과감한 욕, 반말투의 글이 핵심은 아니다. 술집에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자세, 즉 눈높이가 핵심이다. 딴지일보의 포르노사이트 차단에 대한 소송원고인단 모집 소송 기사를 보자.
“본지 드디어 원고인단을 모집한다. 즉, 그간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할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거다” 근데 무슨 재판이냐구? 벌써들 잊으셨는가! ISP 업체의 불법 필터링 말이다. 기억 안나시는 분덜은 여기를 클릭하시라. 다시 말해, 지난 시절 잘 접속되던 해외 성인 싸이트를 정통부 지시로 ISP업체들이 아무런 사전공지없이 차단함으로써 그간 소비자인 우리가 받아온 피해를 법적으로 보상받자는 거다. 사용료는 다 내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받은 거 아니더냐.”
만약 시민단체가 이 이슈를 가지고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전달했을까? 이미 정해진 틀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그려질 것이다.
“0000은 네티즌들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고 포르노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차단한 ISP업체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계획하고 1월 8일부터 원고모집에 들어갑니다. 소송절차는…………”
(우리 누구에게 무슨 목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물론 시민단체들의 글쓰기도 눈높이에 맞춰서 쓰여진다. 누구의 눈높이에? 바로 언론사 기자들의 눈높이다. 그런 식의 방식이 나쁘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정말 나쁜건 기자나 정부 관계자의 눈높이에 맞춘 글들만 홈페이지에 올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제기하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해왔던 네티즌들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우리 단체의 홈페이지에 누가 와서 글을 읽기를 바라는가? 기자인가, 정부관료인가, 국회의원인가?
인터넷에서 글쓰기할 때 필요한 자세가 있다. 첫 번째는 관료주의 문체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 두 번째는 옆집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 세 번째는 공문들의 복사본은 과감하게 폐기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올려진 내용의 상당부분은 옆집 사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관료주의적인 문체들로 가득찬 공문들의 복사본이 대부분이다.
2. 온라인판 유인물 홈페이지
앞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시민단체가 생각하는 인터넷과 네티즌들이 생각하는 인터넷에는 작지만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시민단체가 인터넷을 바라보는 관점은
① 조직화의 도구,
② 홍보와 참여의 수단,
③ 미디어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인터넷이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는 말도 해왔지만 그것은 인터넷이 현실세계와 똑같이 사람들이 쇼핑하고, 문화를 즐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공동체적 성격을 지녔다는 사실,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를 따로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지금까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왔다. 어느 곳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지만 현실과 가상이라는 공간 사이에는 엄연한 문화의 차이, 언어의 차이, 관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서 문제는 시민단체가 여전히 현실세계의 논리로 인터넷 세상의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해왔다는 사실이다. 시민단체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그 속에 존재하는 네티즌이 시민단체가 내뱉는 언어와 주장에 따라 적절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공간에서 관계맺고 있는 열 사람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들여보내보자. 그들의 의사소통방식과 언어들은 금새 달라진다.
성명서와 보도자료는 읽을만한가?
시민단체 홈페이지에는 성명서와 보도자료가 항상 탑뉴스를 차지한다. 그러나 성명서와 보도자료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움직여왔던 전통적인 세력들 – 정부관리, 정치인, 언론인 – 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여론을 움직이는 주체세력이 바뀌고 있다.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온라인 토론회는 현장에서 진행되는 썰렁한 토론회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의견게시판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한 단체가 1999년에 한 포털사이트와 공동으로 사회적 현안에 관한 인터넷 생방송 토론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토론회를 인터넷에서 생방송으로 시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99년 당시의 인터넷 이용자수와 초고속인터넷망 보급률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위 그림 : 오마이뉴스의 생중계, 토론회 생중계는 토론회를 그대로 생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생중계에 맞는 내용과 진행방식을 별도로 고민해야 한다.)
재미없고, 권위적인 요소가 잔뜩 묻어난 토론회는 인터넷에서도 재미없긴 마찬가지다. 이 단체는 99년도의 실험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현실세계에서의 방식을 그대로 인터넷에 가져다놓는다고 인터넷적이지 않다는 것, 인터넷이라는 공간에는 그 공간만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유인물 홈페이지
시민단체의 홈페이지 대부분은 유인물형 홈페이지다. 그게 아니면 잡지형 홈페이지다. 유인물이 과거에는 정말 유용한 선전·선동의 도구였다. 권력의 핵심에 파장을 일으키는 매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규모 집회가 불가능해진 이유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사람들이 예전과 같은 일방통행의 집회를 싫어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집회의 장소에 정보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 거리의 집회는 집에서 있는 책과 더불어 정보를 획득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작금의 시대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집회 장소에 뿌려지는 수십 종의 유인물과 팜플렛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정보는 인터넷에 널려있다. 사람들은 집회에 오기 전에 이미 사태파악을 다 하고 오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설도 재미없고, 유인물도 그저 그렇다. 집회는 당연히 문화적인 행사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단체들의 홈페이지는 유인물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유인물 홈페이지에 유인물에서 통용되던 언어들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의 시대는 시민단체가 발행하는 유인물이 아니더라도 훨씬 고급스럽고 구체적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나무도 보여주고, 숲도 보여주는 정보들이 인터넷에는 풍부하게 있다. 문제는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3. 데이타가 아닌 정보가 필요해.
우리가 홈페이지에 올리는 정보들은 사실 정보가 아니다. 정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 주체와 외부의 객체 간의 사정이나 정황에 관한 보고”이 다. 즉, 단순한 의미의 데이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가 대중들에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도구가 되고,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정보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천할 때 그게 진정한 시민단체가 제공하는 정보다.
누구를 위한 단체의 공식 입장인가?
우리는 홈페이지에 정보를 올리고 있지 않다. 데이터를 올리고 있다. 정보는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과 언어가 중요하다. 하지만 데이터에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홈페이지에 올릴 성명서나 보도자료, 논평을 꼭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써야 할까.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단체의 공식입장인데 꼭 그렇게 써야 되겠어’
‘젊은애들한테는 먹혀도 나이든 사람들한테는 아직 좀 그렇지 않아?…’
‘공동대표나 정책위원장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의문은 그냥 의문으로 묻어두자.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꼭 파격적으로 써야 한다는게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전달하고자 하는 1차 수신자는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이해당사자 등이다. 그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면 된다. 그런데 홈페이지에서 우리는 그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던진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명서 쓰기도 바쁜데 언제 또 홈페이지에 올릴 글을 따로 쓰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명서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성명서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바는 분명하다.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냉철하게 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내는지를 자랑하기 위해서 성명서나 보도자료, 연구보고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과 소통하고, 우리의 주장을 설득하고, 우리의 가치를 그들과 함께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언론사 팩스나 이메일로 전달하고 나서 이제 일 다했다고 손털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 내용을 좀더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1- 2년 전부터 이런 일이 시민단체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지금으로 보면 2001년, 2002년이다.) 몇몇 단체들의 홈페이지에서 성명서/보도자료가 주요 콘텐츠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기사체 글쓰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오마이뉴스가 뜨고 나서 생긴 현상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고 있지 못하고 있다. 흐름을 주도하기 보다는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과정이 중요하고, 그것은 곧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다.
인터넷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시한다. 우리가 발표하는 성명서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 성명서가 왜 작성되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누구의 의사결정에 의해, 누가 작성했는지 알지 못한다. 성명서를 작성하기까지의 숨겨진 이야기, 즉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넷에 모인 대중들은 그런 것에 반응한다. 글을 재미있게 쓰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네티즌들에게 좀더 정확하고 자세히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고, 그들과 호흡하려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중과 소통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시민단체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자 신뢰를 얻는 길이다.
한 단체의 커뮤니티에서 작은 파장이 있었다. 미니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이 시민단체들에게 공개질의를 보낸 것이다. 파병반대운동에도 참여하고, 낙선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에게 물었는데 요점은 이거다. 파병에 찬성한 의원들은 왜 낙선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냐구. 그 결정을 한 의사결정단위의 회의록을 볼 수 있냐고. 한 단체만 답변하고, 세 단체는 침묵했다. 하지만 미니의 추가질의에는 첫 번째 대답을 한 단체도 답변이 없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기업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듯이 시민들은 시민단체에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뭔가에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상황은 민망하다. 흐름을 주도하고,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슬프게하는 것은 또 있다. 시민단체들이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 컨텐츠라는게 사실 성명서, 보도자료, 논평, 의견서, 이런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유인물형 홈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홈페이지에 올려진 컨텐츠가 기사체로 쓰여졌건, 딱딱한 성명서체로 쓰여졌건 상관없이 여전히 시민단체의 홈페이지에는 단체의 공식적인 입장만을 알려내는 일방통행식 소통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할이 그것 아니겠냐고 한다면 현재에 만족하고 계속 유인물만 찍어내면 된다. 그런 상황이 끔찍하다면 웹담당자 뿐만 아니라 모든 상근운동가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