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님께서 디지털 타임즈에 기고한 글입니다. 민경배 교수님의 블로그 http://www.min.or.kr 에 올려져 있어서 퍼왔습니다. 웹2.0 과 시민운동2.0 ? . . . . 한번 생각해볼만한 주제죠?
블로그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본의 우토로라는 작은 마을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지명이다.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우토로 마을은 일제 시대에 교토 근처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노동자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들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마을이 기업에 매각되는 바람에 이 분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블로거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곳 동포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널리 알리고자 관련 글들을 대거 블로그에 올리고, ‘우토로 마을 지키기 블로그 배너 달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우토로 마을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에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이 한동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토로 마을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이다. 바로 블로거들이 이 현안을 의제로 채택한 것이 이 작은 마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증폭시킨 것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블로거들이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캠페인에 나서는 일이 늘고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랜드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랜드 불매 캠페인’을 전개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블로거들이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 역시 블로거들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복지재단의 실종아동 전문기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블로그에 중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블로그 네트워크를 통해 사라진 아이들을 찾는 캠페인이 블로거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실종아동 전문기관 사이트가 액티브 엑스 기반으로 작동하여 네티즌들의 접근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한 블로거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져 이 사이트의 시스템 개편이 이뤄진 일도 있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정홍보처가 국가이미지 제고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마련한 다이나믹 코리아 캠페인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어느 블로거의 지적을 계기로 블로그에 ‘다이나믹 코리아 배너달기 캠페인’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네티즌들의 자발적 캠페인이 게시판과 이메일, 메신저 등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면 요즘에는 블로그로 중심 무대가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블로거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캠페인들은 무엇보다 자발성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자발성은 네티즌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대중을 인위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려는 오프라인에서의 낡은 방식은 여간해서는 네티즌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특정 현안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관심을 기울이려는 마음이 생길 경우엔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참여에 나서는 것이 바로 네티즌이다. 그리고 이런 개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때로는 큰 물줄기를 형성하여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는 곧 웹2.0의 기본 원리와도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참여, 개방, 자율, 집단지성 등을 핵심 키워드로 하는 웹2.0의 패러다임은 이제 비즈니스 모델 차원을 넘어 사회 각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이미 언론계에서는 웹2.0을 차용한 ‘미디어 2.0’, ‘TV 2.0’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에서 소개한 블로거들의 자발적 캠페인 사례들은 ‘시민운동 2.0’이라 명명해도 좋을 듯하다. 여전히 많은 활동을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존 전업형 시민단체들과 달리 앞으로는 네티즌들의 자발적 네트워크를 통해 벌어지는 새로운 움직임이 시민운동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최근 잇달아 나타나고 있는 블로거들의 각종 캠페인은 ‘시민운동 2.0’이란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리는 뚜렷한 징후임에 틀림없다.
(디지털 타임즈, 2007.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