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후기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김설해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하 공룡)은 청주시 사직동에 위치한 사회운동 단체입니다. 공룡의 활동가들은 각자의 매체를 가지고 연대 및 네트워크 활동, 미디어 제작, 관련 교육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룡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는 책과 다큐멘터리, 음악 등을 제작하며, 공룡이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매체를 활용해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을 기획/운영하기도 합니다. 또 각각의 매체를 활용해서 지역 및 전국적인 사안에 연대 및 네트워크 활동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공룡은 2013년부터 <체인지온 ChangeON> 지역 파트너 단체로 함께 해왔고, 올해로 10회째 <체인지온@공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 체인지온@공룡>은 ‘공동체와 미디어의 경계 넘기’라는 주제로 11월 19일(토) 공룡이 운영하는 ‘마을까페 이따’에서 진행됐습니다.

△ 2022 체인지온@공룡 ‘공동체와 미디어의 경계 넘기’ 행사장(마을까페 이따) 

 

오랜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준비된 체인지온@공룡 행사는 반가운 만남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공동체 운동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section 01. 공동체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에서는 북미와 멕시코 와하까 지역의 공동체들을 탐방한 이야기를 이마마사 하지메 님과 정종민 활동가의 여행기로 들어 보았고, <section 02. 다른 세상을 잇는 현장 미디어>에서는 미디어활동가들의 공동 작업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안창규, 하샛별, 양동민 세 분의 활동가로부터 들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발표인 <북미 대륙에서 자치를 찾는 사람들 : 팬데믹, 조지플로이드 반란 이후의 미국을 중심으로>는 2005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인류학 연구자인 이마마사 하지메 님이 발표를 해 주셨는데요, 2022년 2월부터 6월까지 뉴욕, 워싱턴, 오리건, 인디애나주를 거치며 만난 공동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발표에 들어가기 전 미국을 ‘미국’이 아닌 선주민들의 이름인 ‘거북섬’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현지 활동가들의 관점을 먼저 공유해 주셔서, 이야기를 들을 때 해당 지역을 국가로서의 미국이 아닌 활동가들의 공동체로 바라보기 위한 전환을 할 수 있었는데요 그 안에서도 다양한 방식과 지향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공동체들을 발표를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거북섬’이라는 이름에 대해 설명하는 이마마사 하지메

 

뉴욕 퀸즈에서는 2014년 오큐파이 운동 이후 뉴욕 여러 곳에 살던 사람들이 기후 문제와 석유 수탈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자본주의적인 지향을 가지고 모여 살면서 활동을 시작해 팬데믹 이후에는 상호 부조와 네트워크 활동으로 무료 식량 저장고 운영을 하고 있는 Woodbine, 아나키스트들을 중심으로 지자체 소유의 커뮤니티 가든을 점거/사용하며 무료 식량 저장고를 운영하고 공연과 교류회 등을 열고 있는 Club A, 2022년 팬데믹 이후에 타투 스튜디오 겸 인포숍 형태로 운영을 시작하여 감옥폐지 운동에 관한 선전과 직접행동을 하고 있는 Our House를 만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의 감옥폐지 운동에 대해서는 재소자의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감산복합체로서 영리를 추구하는 감옥의 문제와 노예 탈주를 감시하던 경찰과 감옥의 역사적 기원을 함께 짚어내며 현 사회의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이야기 하고 있는 맥락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밖에도 조지 플로이드와 BLM 운동 이후에 조금씩 분화되어 온 각 공동체들의 실천을 그들이 갖고 있는 철학적인 토대와 함께 훑어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 오리건주에서는 90년대~2000년대의 반세계화 직접행동의 경험을 가진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숲이 건조해져 대형 산불이 일어나는 등 기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이 지역에서는 이주해온 사람들과 원래 살고 있던 이들이 함께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와 우익적인 풍토가 충돌하며 최근까지도 네오나치와 안티파시스트 사이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오리건주의 포틀랜드 지역에서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과 연방요원 투입에 반발하여 활발한 저항 행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한 모습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서부에서는 2000년대 급진적 생태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이 만나 I-69(자유무역을 촉진하는 고속도로) 건설 반대운동이 일어났던 배경 속에서 종교계와 학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교류하며 쉐어하우스, 자전거 공유소 등 공공의 공간과 활동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책들을 모아 수감자들에게 보내주는 활동이나, 주택지를 연결해서 공유지로 만드는 활동 등 참조할만한 사례들이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 멕시코 와하까 지역에 다녀온 이야기를 발표하는 정종민 활동가

 

두 번째는 <매생이와 와하까 치즈 – 저항을 위한 공동, 작업>이라는 제목의 발표였는데요, 2022년 2월부터 5월까지 멕시코 와하까 지역을 다녀온 정종민 활동가가 발표해 주셨습니다. 고향이 장흥인 정종민 활동가는 장흥의 특산품인 매생이의 숨겨진 뜨거움과 멕시코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와하까 치즈 같다’고 표현되는 것의 공통점에 착안해서, 체제 안에 포섭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을 재미있는 제목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정종민 활동가는 2006년 신자유주의 세계화 한미FTA반대 운동이 한국에서 펼쳐질 때 교육대학교를 다니며 미디어활동을 하던 중 와하까 지역에서 교사 파업을 시작으로 일어났던 민중항쟁을 다큐멘터리와 속보 영상으로 접했고, 당시 현장을 기록한 미디어활동가 브래드 윌(당시 총격으로 사망)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와하까 지역을 여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와하까는 여러 고대 국가들이 있었던 지역이고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들과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지만, 다른 멕시코 전역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무너진 공공성과 인프라 속에서 끊임없이 주민들의 요구와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광산 개발로 지하수가 고갈되는 등 자원 수탈 문제에 항의하는 원주민 회의와 사파티스타, 다양한 구성의 연대자들이 함께 행진하는 모습도 전해 들었습니다. 

 

△ 와하까 거리에 그려진 판화와 낙서들 

 

이러한 사회 현실 속에서 멕시코 판화운동은 디에고 리베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적 벽화운동으로부터 파열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흐름을 거치면서 멕시코의 언어와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으며, 원주민으로서 지켜온 삶의 방식과 현실의 사회 문제 등을 일상 속에서 이미지로서 드러내고, 저항 운동의 내용과 그 안에서 발생한 이야기와 노래, 정치 구호 등 다양한 것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속되어 왔다고 합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포스터와 구호들, 벽화와 판화, 낙서 등이 도시에 새겨지고 지워지기도 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드러내는 분명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두 연사님의 시간을 꽉 채운 발표가 끝난 뒤, 섹션을 기획한 공룡의 박영길 활동가가 한국 사회의 공동체 운동이 과연 고여 있지 않고 현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변화의 원천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코로나 이후 공동체들이 자기의 생존을 위한 울타리 안에 갇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점검으로부터 출발해 섹션을 기획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1부 행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 1부 행사 마무리 발언 중인 공룡 박영길 활동가

 


 

<section 02. 다른 세상을 잇는 현장 미디어>는 2022년 봄, 봄바람 순례단과 함께 전국 곳곳의 투쟁 현장 이야기를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봄바람 프로젝트’를 계기로 모였던 미디어활동가들 중 그룹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초청해 현장과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온 미디어활동가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지속적인 활동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와 조건을 어떻게 구축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 공동 작업실 ‘망원식당’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샛별 활동가

 

먼저 <망원식당, 잔치를 사랑한 작업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하샛별 활동가의 발표를 들어보았는데요,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로 작업하면서 만난 감독님과 당시 제주 4.3항쟁에 관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감독님을 만나 함께 증산동에 첫 공동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만 밥을 잘 먹자’는 취지로 작업실 이름을 <증산식당>이라고 짓고 함께 영향을 주고 받는 공동 작업실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증산동에서 망원동으로 이사도 하고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활리듬과 가치 지향에 스며들고 각자 기록하고 있는 현장에 함께 연대하고 관심을 가지며 작업을 도와가며 지내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늘 긴장감이 있는 현장에 연대하다 보니 작업실에서는 느슨한 공동체로 서로의 일상을 챙기며 교감하며 힘을 주고 받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한 서로에게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에게 열려 있는 환대의 공간으로 다른 작업자들이나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을 초대해 교류하며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잔치’를 여는 것을 그 계기로 삼고 있다고 해 주신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때때로 싸우기도 하지만 계속 같이 밥을 먹고 싶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긴 시간동안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스튜디오R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양동민 활동가

 

이어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미디어, 스튜디오 R>라는 제목으로 양동민 활동가의 발표를 들었는데요, 투쟁의 미디어를 표방하는 스튜디오R은 2020년 4월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컨텐츠를 올리면서 시작했고 7월부터 팀 체제로 11명의 동료들과 협업하며 운영해오다가 최근 휴지기를 가진 후 10월부터 2기를 출범해 현재는 6명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튜디오R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스튜디오는 따로 없고 ‘현장이 우리의 스튜디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정해진 공간은 없지만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기획회의도 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세미나도 하면서 서로의 역량을 강화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로 투쟁 현장의 사람들을 인터뷰 하거나 속보영상을 만들고 필요할 때는 라이브 스트리밍도 하면서 수많은 현장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1인 미디어로 시작해서 현장과 인연을 맺으며 인터뷰 영상도 제작해 보게 되고, 또 다른 방식으로는 사회운동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컨텐츠도 만들어 보면서 적합한 제작 형태와 내용을 고민하다가 지금은 현장의 소식을 전달하는 데 좀 더 집중하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2년이 넘는 시간동안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쿠팡과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의 투쟁, 장애인 이동권 투쟁 등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수많은 현장들의 소식을 전해왔던 과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작된 컨텐츠가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채널과 컨텐츠에 대한 분석도 빼놓지 않고 진행하고 계셨는데요, 파급력과는 별개로 ‘내 마음 속 인기컨텐츠’를 직접 보여주시며 제작 당시 느꼈던 감정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들려주셔서 그동안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해오신 스튜디오 R의 강점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또 새롭게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을 리쿠르팅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고민하고 계신 스튜디오 R의 활동을 더욱 기대하고 응원하게 되는 발표였습니다. 

 

△ 미디어활동가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주신 다큐인의 안창규 활동가

 

마지막 발표는 <다큐인 ing>라는 제목의 안창규 활동가의 발표였는데요, 농담처럼 고인물로 자기소개를 하셨지만 17년 미디어활동을 하면서도 어제 시작한 것 같다는 안창규 님은 영화를 통해 위로 받았던 청소년 시기에 영화감독의 꿈을 가졌던 이야기부터, 첫 카메라를 샀던 때, 비디오 액티비즘 수업을 들으면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영상 자료로 접하고 점점 한국 사회의 현장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 인연으로 부안 핵폐기장 투쟁 현장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영화제의 스탭으로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흥미롭게 들려주셨습니다. 영화제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상영을 시작하는 순간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맨발로 느낀 갯벌의 부드러움에 낭만을 느껴버렸다고 하는데요, 당시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을 기록하고 계시던 이강길 감독의 ‘제법 재밌어.’라는 말에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2005년부터 2010년까지 1895일간의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곁에서 함께 호흡했던 기억이 이후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고, 청년 주거 문제로 다큐 작업을 하던 중 2015년 7월에 4.16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던 박종필 감독의 요청으로 현장에 내려갔다가 4.16미디어연대 활동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꿈을 꾸고 실천해왔던 안창규 님에게 2017년과 2018년 박종필 감독님과 이강길 감독님의 죽음은 큰 사건이었다고 하는데요, 많은 방황과 고민 끝에 박종필 감독님이 생전에 꾸었던 꿈을 따라 가보는 <스탠바이, 액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과정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안창규 님의 발표를 통해 박종필 감독님이 마지막에 남기셨다는 ‘우리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이 모두에게 묵직하게 남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기억해주고 서로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미디어활동가들의 모습이 많은 울림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미디어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고충들과 고민에 대해서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 2022 체인지온@공룡 행사가 열린 마을까페 이따의 모습

 

다섯 분의 발표자들의 의욕 넘치는 발표에 질의응답 시간이 모자라기도 했는데요, 행사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 자기 소개도 하고 궁금한 점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년 동안 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2023년에도 함께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